평일에는 집에서 하루 한끼만 해결하면 되지만 주말은 토요일, 일요일 합쳐 6끼를 해결해야 한다.
가능하면 간편하게 해결하고 싶고 그래서 때로는 외식을 하기도 하지만 1주일마다 맞닥들이는 일꺼리를 마주할 때마다 매번 새롭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결혼 전 '부모님 댁에 얹혀 살 때'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고민이다.
끼니 해결.. 그것도 어른으로 가는 관문인 것인가.
1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전.
idgie는 임신한 몸으로 계속 된 야근을 하다보니 피로를 못이기고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번잡스러운 일을 하기 싫어 식빵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때마침 윤섭이가 짜장밥 이야기를 꺼낸다.
안그래도 냉장고에 남아 있는 춘장을 언젠가는 처리해야 했다.
춘장뿐만 아니라 감자도 꽤 오랫동안 냉장고에서 처박혀 있고 얼마 전 처제 생일 때 먹다 남은 돼지고기도 냉동고에 오랜 시간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윤섭이의 얘기를 듣자마자 그 세가지를 한꺼번에 처리하기로 결심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냉동고에 들어 있는 고기를 꺼내 해동을 시키고 감자를 꺼내 껍질을 벗겨 내었다.
오래된 감자이다보니 싹은 돋지 않았지만 곳곳에 시커먼 자국이 배어 있다.
최대한 도려내다 보니 감자 모양이 영 뽀대가 나질 않는다.
다소 여유가 없어서 그랬는지 칼질도 대충대충 해버렸다.
해동한 고기를 썰어야 하는데 칼이 좋질 않아 잘게 썰기가 힘들었다.
또 고기가 오겹살인지라 너무 잘게 썰 경우 살코기와 비게가 분리되어 버리는데 그렇게 썰면 안될 것 같아서 그냥 큼지막하게 썰어 버렸다.
자른 고기를 볶고 거기에 야채를 함께 볶고, 남아 있는 춘장을 최대한 다 짜내어 다른 후라이팬에 볶았다.
그러다가 춘장과 고기, 야채를 함께 볶고 물을 부어 끓이고....
그렇게 요리를 해나가다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다.
살짝 간을 보니 맛이 좋았다.
이제 물녹말을 넣어 조금 걸쭉하게 만들어 주면 요리 끝.
그런데 거기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물에 녹말을 너무 많이 풀어 넣은 것이다.
걸쭉해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녹말이 너무 많이 풀리다보니 짜장 특유의 맛이 많이 감소해 버렸다.
idgie는 아침에 끓여둔 청국장이 있었기에 나와 윤섭이 둘이서 짜장으로 식사를 했다.
난 요리하는 과정에서 이미 피곤해졌고 막판에 잘못 넣은 물녹말 때문에 제대로 맛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윤섭이는 흐뭇한 표정으로 연신 즐겁게 숟가락질을 해댔다.
이제 나도 먹는 즐거움이 아닌 먹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시기가 온 것인가..
양이 좀 많아서 조금 남겨야 했고 일요일인 오늘 아침에도 그것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럼으로써 그동안 쌓여 있던 '재고'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어느 시간대를 나의 개인시간으로 활용할 것인가는 겉으로 확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중요한 화두였다. 직관적으로 봐도 아침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10년 이상 이어져 온 생활 패턴에서 오는 관성의 힘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더 어쨌거나 꾸준하게.. 아마 결혼 후부터 더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은데..
아침에 잠에서 깨는 시간이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침 여명을 보고 찍는 경험도 그 과정에 도움이 되었고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아침 시간을 아주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은 것도 그랬다.
한동안 내 의지만 확고하다면 중간에 흐지부지 되는 일이 없으리라 믿는다.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등에 업은 아길르 삼 년이나 찾아다녔다는 노파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이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날숨과 들숨이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이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김영갑)
사진을 취미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사진과 관련된 책에 관심을 갖고 관련된 목록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 이상은 눈에 띄었을 책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거의 필독서로 권장되는 책이건만 그동안 왠지 모르게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그런데 잊을만 하면 그 제목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 상에서 혹은 신문지상에서.
난 신비주의를 부정하는 편이지만 잊을만 하면 마주치는 책 제목, 그것은 이 책을 꼭 읽어 보라는 계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 없는 분야도 아니기에 냉큼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의 앞부분에 인용한 글귀가 나온다. 얼마 전 감나무를 빗대어 쓴 글도 있고 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보다.
정작 소중한 것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제 이 세상에 나온지 40년 가까이 된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깨닫게 된 사실이다. .
내게 부여된 잠재력의 절반이나 제대로 쓰고 있을까, 내게 주어진 행복의 절반이나 인식하면서 살고 있을까 싶다.
그런 한편으로 이런 궁금증도 든다.
진짜로 나는 파랑새를 안고 있는 걸까?
아직도 진짜 파랑새는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나의 밖에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이 역시 체험상으로 파랑새는 외부가 아닌 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인간이 간사한 존재라서일까 혹은 나약한 존재라서일까.
아니면 비겁한 것일까.
나의 문제를 외부에서 찾으려는 심리는......
아직도 덜 성숙한 자아상이려나..
아니면 너무 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자화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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